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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외소식/베트남

박항서! 2편 쉽지 않았던 국내 지도자 시절

by 신림83 2020. 9.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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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트남 국민영웅 박항서 형님 이야기. 2 (쉽지 않았던 국내 지도자 시절)

박항서! 는 시리즈 물입니다.

이전편을 못 보셨으면 아래 링크로 들어가시면 전편 링크를 찻으실수 있습니다.

 

박항서! 전편 링크

 

박항서! 한국 선수 생활부터 베트남 국가대표 감독까지 스토리

박항서! 한국 선수 생활부터 베트남 국가대표 감독까지 스토리​제가 티스토리 블로그에 연재했던 박항서 ...

blog.naver.com

 

2편의 시작!!

그의 나름 화려했던 선수생활을 지나, 쉽지 않았던 항서 형님의 한국 지도자 시절에 대하여 이야기해볼까 합니다.

지도자 시절 이야기

조광래 감독과 더불어 K리그에 몇 안 되는 육성형 감독, 어떤 약팀이든 6강 전력은 만들어 낸다. 평을 받는 지도자

 

은퇴 후 친정 팀 LG 치타스의 트레이너로 선임되어 1996년까지 LG의 트레이너와 코치로 활동

 

1994년에는 1994 FIFA 월드컵 미국에 출전하는 국가대표팀 트레이너로 활동하며 김호 감독을 보좌,

 

수원 삼성 블루윙즈의 창단 감독을 맡은 김호 감독을 따라 수원 삼성 블루윙즈의 코치로 합류하여 2000년(시즌 전)까지 활동

 

그리고 전설의 2002 월드컵

2002 FIFA 월드컵 한국/일본에서는 수석코치로 거스 히딩크 감독을 보좌

 

박항서, 히딩크 2020년 사진, 딩크형님 지금 중국에서 일하시네요 중국, 베트남 경기 기념쯔음

 월드컵 4위의 성과를 인정받아 대한민국 정부로부터 체육훈장 맹호장 수령.

 

이때가 참 좋은 시절이었지, 항서형님한테도 대한민국에도

딱 여기까지가 지도자로서의 항서 형님의 좋은 시절...

앞으로 인생을 꽃길?

하지만 앞으로는 내리막과 오르막을 반복...

 

월드컵 이후

2002 부산 아시안 게임 대표팀을 맡으며 생애 처음으로 감독직

 

  하지만 당시 하늘을 찌르던 대표팀의 사기를 등에 업고도 겨우 동메달(…)을 땄다는 이유로 AG 이후 해임됐다. 월드컵과 올림픽에 비하면 우승 가능성이 확연히 높은 대회에서, 그것도 대한민국 안방에서 열린 대회임에도 금메달을 못 땄다는 점이 컸다.

 

  조금 더 이야기하자면, 9전 7승 2 무의 성정이지만, 월드컵 4강 멤버 박지성, 이천수, 최태욱, 현영민 이 포함되고, 이동국, 김용대 또한 포함, 추가로 와일드카드 3명 중 2명이 월드컵 4강 멤버인 이운재와 이영표였다. 국민의 눈높이는 무조건 우승이었으니 동메달은 부진한 성적이긴 하다.

 

  박항서 감독에겐 기회이긴 했지만, 축구협회의 홀대이자 졸속 계약이기도 했다. 아시안 게임을 두 달 앞두고 계약을 했으며, 그것도 2004년까지 만의 계약이었다. 사전 코칭스태프 등은 존재하지 도 않았다. 축구협회는 아마도 항서 형님을 유지하면 히딩크호의 영광이 이어질 줄 알아겠지지만, 눈치를 깐 정해성 아재는 고사를 했지.

 

  아쉽게도 항서 형님은 기회를 살리지 못했다. 개인의 능력인지, 환경 탓인지 모르겠지만...

 

쉽지 않은 도전이었지 아쉽다...

 이 당시 축협의 박항서 홀대는 몇 가지가 더 있다.

  9월 7일 남북축구대회가 열리는데 축협은 방한한 히딩크 감독을 기술고문 자격으로 대표팀 벤치에 앉히는데, 항서 형님과 전혀 논의가 없었다.  그냥 축협 마음대로, 

 

  9월 9일 박항서 감독은 협회와 연봉 문제로 이견차를 좁히지 못해 아시안게임까지 무보수로 맡은 뒤 다시 논의하자고 협회에 제안했다.(연봉 관련 협상이 되지 않음) 축협은 협회에 대한 명백한 항명이라며 퇴출을 시사했는데,

 

 일각에는 동메달, 연봉협상들은 핑계고, 박항서 감독이 비주류 대학 출신, 축구협회와의 관계가 원래 원활하지 않음등이 경질된 주된 이유란 말이 있었다.

 

 조금 더 옹호론을 적자면, 대표팀 엔진 박지성은 차출 문제로 8강부터 합류, 유상철은 빠졌고, 고종수는 부상으로, 김두현이 들어옴, 황선홍 대신 들어온 이동국은 그 당시에는 월드컵 엔트리 탈락 여파로 멘틀이 좋지 않은 상태였다. 그 외에도 여러 세대교체를 하긴 했는데, 너무 성급하게 교체한 느낌을 팀의 성적이라면 어느 정도 납득되지 않을까...

 

항서형님의 슬픈 추억...

 여하튼 아픔만이 가득한 항서 형님의 국대 감독 시절의 추억..

 

 

이후 포항 스틸러스 코치

전남 드래곤스 기술고민

  전남에 감독으로 예정이었으나, 허정무 감독이 선임되는 바람에 기술고문(명예직 비슷) 자리로

 

경남 FC 감독

  첫 시즌 2006년 7승 5무 14패, 12위로 마무리

  2007년 K리그 4위, 6강 플레이오프 진출

  성적은 많이 올렸지만, 구단 프런트와의 갈등으로 감독직에서 물러남.

 

전남 드래곤즈 감독

  허정무 감독이 대표팀 감독으로 선임되어 그 자리를 감독으로 부임

  FA컵 준우승, 2010년 성적 부진의 책임을 지고 감독 사임, 이후 정해성이 전남 새 감독으로 옴

이쯤의 기사

 

박항서 前 감독 '지금이 재충전 시기라고 생각했다'

(베스트일레븐) 최근 전남 드래곤즈 감독직에서 갑작스레 자진 사임한 박항서 감독이 재충전을 충분히 가진 후 다시 현장에 돌아오겠다고 밝혔다. 박항서 ...

n.news.naver.com

  전남의 부진은 박항서 감독의 책임일까?

 

2011년 K리그 승부조작 사건 - 나무위키

C급 징계를 받은 선수들은 자진신고자들 중 가장 가벼운 징계를 받았으며, 이들은 초기에 2년 징계를 받았다가 이후 6개월 경감을 받아 현역 복귀가 가능해졌다. 승부조작 가담자들의 복귀 가능�

namu.wiki

  해당 사건으로 팀의 부진은 박항서 감독을 능력과는 상관이 없다는 여론이 있었다.

 

2012년 상주 삼무 감독 취임, 2015년 계약기간 만료로 떠남

 2014년 인천 아시안게임 축구 대표팀이 금메달을 따면서, 유력 선수들이 병역특례 받게 되면서 상무에 갈 선수가 없는 관련에 인터뷰 기사가 있었음, 계약만료쯔음 임기중 3번째로 부임한 부대장(상사)과의 트러블 관련 인터뷰가 있었음.

 

이후 잠시 고향인 산청군에 돌아가 짧게 고등학교 유소년 코칭 시간을 가짐

 

창원시청 축구단 감독 취임, 1년 이후 사임

 

국대 감독, 프로감독, 실업 감독을 오가며 쉽지 않았던 국내 지도자 시절.

환갑의 항서형, 그리고 마지막 도전

 이때가 항서형 환갑이었던 시기, 지도자 세대교체가 워낙 빠르게 진행되고 있어, 항서형 스스로 앞으로는 프로팀과는 인연이 없을 거라 생각했다. 그러던 중 아내가 동남아는 어떠냐고 물었고(사모님 인맥이 좋으신 듯...),

 

 직접 에이전트와 연결, 항서형을 솔직하게 나는 지금 무직이며 일을 하고 싶다고 전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베트남 국가대표팀 제의가 오게 되는데,  소식을 접했을 때는 기뻤으나, 그 시절에는 베트남 국가대표팀의 감독 자리는 외국인 감독들의 무덤자리라는 소문이 많았고 의구심을 가진 채로 수락하게 된다.

 

하지만 이 선택이야 말고, 항서형의 인생 2막, 자신의 인생은 물론 한 국가의 터닝포인트가 되는 신의 한 수

 

대한민국 국대 감독 커리어 이후 한국의 여러 프로팀을 전전하며 자신의 캐리어를 업그레이드 못했왔던 나날들에서,

이제 하나의 국가의 국민영웅 반열에 오르는 항서 형님의 인생 2막이 시작됩니다.

 

많은 걸 포기하고 베트남으로 떠나시는 항서형님

 

다음편 링크해둡니다. 

3편 베트남, 베트남 축구이야기

 

베트남 국민영웅 박항서 형님 이야기. 3(베트남, 베트남 축구 이야기)

베트남 국민영웅 박항서 형님 이야기. 3 (베트남, 베트남 축구 이야기) 베트남 국민영웅 박항서 형님 이야기는 시리즈 물입니다. 앞의 연재물은 링크로 해두겠습니다. 이전 이야기 못보신 분은 ��

sillim83.tistor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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봐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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