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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외소식/베트남

박항서! 1편 프로필, 선수생활

by 신림83 2020. 8. 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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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항서! 1편 프로필, 선수생활

현제 베트남 축구 국가대표팀 박항서 감독님 이야기

 

베트남 매스컴에는 연일! 우리 매스컴에도 자주 등장하시는 박항서 감독님의 이야기

베트남 관련 글을 한 번씩 쓰면서, 꼭 한 번은 써봐야겠다고 생각했던 이야기를 써보려 합니다.

 

즐거워 보이시는 박항서 형님

박항서는 누구?

대한민국 축구선수이자, 감독, 현제는 베트남 축구 국가 대표님 감독을 맡고 있습니다.

아시아에서도 약체로 분류되던 베트남 국가대표팀을 맡고 난 이후 난 이후부터,

 

2018 AFC U-23 컵(준우승)

2018 자카르타·팔렘방 아시안 게임(4위)

등 마찬가지로 매 대회마다 팀의 역대 최고 성적을 갱신하며 새로운 역사를 창조하고 있는 박항서 감독님 

 

2018년 동남아 축구연맹 대회인 스즈키컵도 10년 만에 우승,

2019 AFC 아시안컵에서는 8강에 올랐다.

2019년 동남아시안게임(축구팀은 22세 이하 대회. 각국 올림픽위원회 연합 주관)에서 60년 만에 우승을 달성했습니다.

 

 

베트남의 영웅!!

 

한국에서도 지도자 기간이 꽤 있지만, 베트남의 업적이 너무나도 강력한지라, 표시할 필요가 없을 정도...

 

대충 강력하다는 표시 짤!

 

메인 전술은 5-4-1 카운터 어택으로 철저한 실리주의 축구를 추구한다. 2020년 4월 16일 자 소식에 의하면 팀 전술의 변화를 시도하려고 합니다.. 한양대 체육학과 77학번 출신입니다. 

 

 

변화 꾀하는 박항서 감독, “상대가 베트남 전술에 익숙해진 건 사실”

(베스트 일레븐)박항서 베트남 축구 국가대표팀 감독이 상대의 전술적 대응에 대처하기 위해 새 선수를 뽑아 전술에 변화를 꾀하고 있다.베트남 영자매체 <베트남 익스프레스>에 따르면, 박 감��

n.news.naver.com

 

간단하게 프로필!

57년 10월 1일 생

경상남도 산청군 생초면 어서리

  여담이지만, 우리 아버님 고향도 여기, 나의 아버님 동생, 즉 작은아버지와 친구분이다.(경남 어르신들 허풍을 적절하게 필터 해서 듣도록 합니다.)

감독님 어머님 인터뷰, 아직 경남 산청에, 감독님의 친형님댁과 거주 중이십니다.

 

박항서 감독 노모 “아들은 잘 낳았네…공부도 축구도 잘했어”

"내가 아들은 잘 낳아났지요. 아들 보러 베트남 가고 싶네요" 박항서 베트남 축구대표팀 감독 겸 23세 이하 대표팀 감독의 어머니 박순정 씨는 29일 경남 산청군 산청읍의 한 요양원에서 '베트남 �

news.sbs.co.kr

뒤에 할머님들 향서형님 어머님 부러우실듯!!

 

 

산청은 이쯤 위치함

 

 

축구선수로는 미드필더로 활약 

현재는 베트남 대표팀 축구감독

 

 

별명쌀딩크(뭐냐.. 이건), 히띵크(He Think), Pho체티노, 슬리핑 원, 잠자는 명감독(주무시는 장면이 몇 번 언로에 노출되기는 했었죠..)

 

 

전날 과음하신 걸까 많이 피곤해 보이신다...  슬리핑 원, He Think, 잠자는 명감독 호칭을 이유

박항서 형님의 제일 유명한 짤은 아무래도.... 상주 상무 감독 시절 찍힌 한 샷

  까들은 K리그는 감독도 졸 정도로 지루하다면서 이걸 자주 써먹습니다.. 영원히 고통받으시는 항서형님

  베트남에서 성공하시기 전에는 부정적인 이미지에 주로 거론되었으니, 슬리핑 원 등으로, 베트남에서 성공하신 뒤로는 잠자는 명감독, He Think(그는 생각한다.) 등으로 긍정적으로 회자되고 있다. 긍정적인 밈이 되었네요. ㅋㅋㅋ

 

박항서 형님의 해명

해명해주세요!!
ㅠㅠ 아니라고
ㅋㅋㅋ

 

 

잠자는 명감독의 해명 유튜브

 

이건 또 상주상무시절 ㅋㅋ 장실 살짝 가실러다 걸림 ㅋㅋ 살짝 편하게 사신듯. 전 안티가 아니라능.. 팬입니다. 항서형림

유년기 간단 정리

  집안은 유복했했습니다. 큰 부자는 아니구요, 아버님 경찰간부 제직 중 부상으로 국가유공자였고, 집안에서 약방(옛 시골에는 동네 한약방이 있었다.)을 하였습니다.

 

축구의 시작은 느렸습니다.. 고등학교 때부터 시작했고, 고3 전국 청룡기 축구대회에서 결승골로 경신고에 우승을 줌, 한양대 2학년, 1978년 아시아 청소년 축구선수권대회에서 청소년 대표팀 주장으로 우승을 함(이 시절은 대학교 진학한 것만으로도 엘리트....)

 

항서형님의 리즈시절 패기가 있어 보입니다.

본격 선수시절로

  한양대 졸업 이후 1981년 실업팀, 제일은행 입단, 이후 육군 축구단(군대는 언제나 문제다.) 복구, 1984년 럭키금성 창단 맴버 입단 프로무대에 데뷔했습니다. 1985년 리그 우승을 이끌며 리그의 베스트 일레븐에 선정, 1986년 주장, 팀은 리그 준우승, 31살 나이로 은퇴.

 

 

항서형님은 20대 때에도 숫기가 없으셨따...

 

럭키금성은 LG의 옛 이름입니다. 이걸 모를 수도 있겠구나란 생각이 순간 들었네요

 

나때는 말이야... LG는 럭키금성이었어 

 

 

선수로서 국가대표로 나간 A매치 경기는 1경기, 1981년 3월 한일정기전에서 전반 17분 교체되어 73분, 박항서 형님이 가장 아쉬워하는 선수 시절 커리어

 

38초 즈음 지단보다 시원한 박치기를 시전하시니 보세요. 심판 아재 밭치시고 ㅋㅋ 귀여워하시네요

 

선수 시절 별명은 대머리 링커(당시 미드필더를 링커라고 불렀다.),

또는 빠때리 잘 뛰어서 빠때리(사랑을 배터리 이전의 또 다른 배터리??)

 

 

요즘 밧데리 하면 이 누나인데 형님도 밧데리였다니..

 

위의 사진은 모두 20대 때의 사진들입니다.

 

그의 나름 화려했던 선수생활을 지나,

쉽지 않았던 항서 형님의 한국 지도자 시절에 대하여 이야기해볼까 합니다.

 

 

마감하면서 박항서 형님의 한국에서의 CF

 

박항서, 문근영 둘다 리즈시절, 좋은 시절이었지

베트남 국민영웅 박항서 형님 이야기는 시리즈 물입니다.

후속편은 링크하겠습니다.

 

베트남 국민영웅 박항서 형님 이야기. 2 (쉽지 않았던 국내 지도자 시절)

 

베트남 국민영웅 박항서 형님 이야기. 2 (쉽지 않았던 국내 지도자 시절)

베트남 국민영웅 박항서 형님 이야기. 2 (쉽지 않았던 국내 지도자 시절) 베트남 국민영웅 박항서 형님 이야기는 시리즈 물입니다. 1편은 링크 붙여두겠습니다. 베트남 국민영웅 박항서 형님 이��

sillim83.tistory.com

 

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봐주셔서 감사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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