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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이완용의 장남 이승구 죽음에 대하여, 며느리 강간 간통, 이완용 장남의 자살은 루머일까?

by 신림83 2021. 3. 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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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완용의 장남 이승구 죽음에 대하여, 며느리 강간 간통, 이완용 장남의 자살은 루머일까? 

이완용의 장남의 죽음을 둘러싼 여러 가지 이야기가 있어서 가져와 봅니다.

이완용

이완용 기회주의자

이완용 그를 표현하자면

 

넘버원 기회주의자?

친일반민족행위자 라고 말할 수 있겠네요.

 

1858년 7월 17일 조선 경기도 광주부 낙생면 (現 경기도 성남시 분당구 백현동)

사망 1926년 2월 11일 (67세)

사인 폐렴

 

호 일당(一堂)

불교 붕당 친미파 (1882 - 1896) 친러파 (1896 - 1896) 개혁파(독립협회) (1896 - 1898) 친일파 (1904 - 1926)

 

자녀

장남 이승구

차남 이항구

손자 이병길

 

을사오적, 정미칠적 경술국적, 친일인명사전 등재

 

참.. 사인이 폐렴, 천수를 누리다 가셨네요.

 

조선 후기 고위 관료이자, 매국노의 대명사

 

이완용의 장남, 이승구의 죽음에 대하여

이완용 장남 이승구

이숭구 죽음 비관 자살설

1909년12월22일 당시 내각총리대신이던 이완용

벨기에 황제 추도식에 참가차 인력거에서 내리다 이재명 의사의 칼에 피를 찔려 중상을 입고 대한제국의 최초 서양 병원인 한양의원에서 생명을 건진다.

당시 큰아들 (이승구)의  절세미인 며느리(임건구)의 병시중을 받던 중, 며느리를 강간하게 된다.

한양에서 들려오는 소문으로 일본 유학 중 귀국하여 집에 왔더니 아버지(이완용)가 처의 무릎을 베고 누워 있었다.

사실인 것을 안 후 고민 중에 자살로 막을 내린다

아들이 자살한 후 며느리를 첩으로 삼음, 후 묘소도 임걸구와 합장했다고,

 

우국지사 학자 황 현이 쓴《매천야록》의 내용의 일부이다.

 

당시 신문, 대한매일신보와 황성신문 등에도 이완용과 며느리 관계를 암시하는 기사가 많았다.

이승구는 병약하여 자연사 하였다는 주장

 어렸을 때 부터 몸이 허약했던 이승구, 26세의 나이로 병으로 죽었다. 자살이 아니다.

 

역사학자들은 자살보다는 자연사에 무게를 두지만,

워낙 악날했던 이완용의 명성 때문에, 많은 이들이 전자, 자살설을 믿고 있다.

그만큼 이완용의 악명은 당대에도 드 높았다.

 

이완용 3.1 운동 경고문

이완용 3.1운동 경고문

시위를 한다고 바뀔 것 같더나?

우리 천황폐하는 그럴 분이 아니다.

 

우리는 일본의 도움이 필요하다.

우리는 힘이 없으니 일본 덕을 보는 게 맞다.

 

그러니 가만히 맡은 바 일을 열심히 하고 학생은 공부를 열심히 하고 노력하라

 

그것이 조선을 위한 길이다.

 

....

 

조선이 아닌 이완용을 위한 길이겠지..

 

봐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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