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에고 마라도나 별세 축구 전설인 그가 사망, 떠났다. 프로필, 신의손
아르헨티나의 축구 전설, 지금도 자주 소식을 전해주었던, 디에고 마라도나 축구선수 이자 축구감독이 25일(현지시간)으로 심장마비로 별세했다는 소식을 보았습니다.
최근 그는 경막하혈종 뇌수술을 받았고 퇴원했는데, 이것이 이 주 전이었는데요.
수많은 지구인이 그를 애도한다.
디에고 마라도나
Diego Maradona
풀네임 본명
디에고 아르만도 마라도나 프랑코
Diego Armando Maradona Franco
1960.10.30
아르헨티나 출생
165, 70kg
전설의 축구선수 주요 포지션은 미드필더,
축구감독
이탈리아 SSC 나폴리 스쿠데토 2회, UEFA컴 우을 가져오며 구단의 전설이 되고, 그로부터 영구결번이 된 그,
아르헨티나 대표팀으로 출전하여 1986년 월드컵 우승, 1990년 월드컵 준우승의 주역
아르헨티나에는 그가 살이 있을 당시부터 그를 숭배하는 마라도나교 라는 종교가 실제 하고 있을 정도이다.
축구인생의 시작
그의 유년 시절은 부유하지 않았고, 오히려 가난한 가정 출생이다. 부친은 막노동으로 힘든 생활의 영위했으며 3남 4녀의 첫째로, 집을 위해 뭐라도 해야 한다는 사명감이 컸다고 한다.
그 와중에 찾은 재능이 축구, 8살 때부터 지역 클럽에서 신동으로 수문이 퍼져 일치감치 스카우트에게 발탁되며 11살에 불과했던 그가 계약을 하며 본격적 축구 인생이 시작된다.
별세
리오넬 메시는 "아르헨티나 국민과 축구에 있어 매우 슬픈 날, 그는 우리를 떠 났지만 떠난 것이 아니다. 디에고는 영원할 것이다"라고 애도했습니다. 아르헨티나는 3일간의 국가 애도 기간이 선포되며,
아르헨티나 대통령 또한 "디에고는 아르헨티나를 세계 정상으로 올려주었으며, 우리를 행복하게 해 줬다"라고 애도했다.
브라질의 또 다른 축구 전설 펠레 또한 "정말로 슬픈 소식이다. 위대한 나의 친구를 잃었고, 세계는 전설을 잃었다. 할 말이 많은데, 지금은 하나님께서 가족에게 힘을 주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언젠가는 하늘에서 함께 축구를 할 수 있으면 좋겠다"라고 애도했습니다.
크리스티아누 호날두 또한 애도의 말을 남겼습니다. "오늘 나는 친구와 작별했다. 세계는 천재에게 작별을 말했다. 역대 전설 선수, 비할 데 없는 마술사, 너무 빨리 떠났지만, 한계 없는 유산과 결코 채워질 수 없는 공허가 남았다 편히 잠드 소소 에이스 결코 잊히지 않을 것입니다."
전설의 축구선수
지구에서 최고의 축구 선수를 뽑으라면, 탑 3 항상 들어가는 선수
압박축구라는 것은 마라도나를 견제하기 위해 나온 전술
바르셀로나 스카우트가 그를 보며, 축구의 신이라 격찬했고,
클럽 시기에 축구에서 한 명의 선수가 팀을 어디까지 끌어올릴 수 있나의 논쟁의 주인공이 된 그
조금 그런
논란들
신의손
축구는 당연히 골키퍼를 제외하곤 손을 쓰면 안 되는데, 어떤 순간에 고의이던 아니던 손을 쓴 선수가 생기는데, 이게 반칙으로 인정되지 않으며, 그런 플레이로 인해 결정적으로 승리가 되는 현상을 빗댄 말이다.
사실상 신의 손이라는 단어 자체를 마라도나 가 탄생시켰다고 봐야 한다...
1986년 멕시코 월드컵 8강전 유명한 오심으로부터..
도핑의혹
1994년 미국 월드컵, 에페드린 양성 반응이 나왔고, 월드컵 출전 정지
마약
1991년 양성 판정을 받아 15개월 출장 정지 쟁기, 이후에도 마약을 끊지는 못한 걸로 보인다. 2004년부터는 사용하지 않은 것으로 보이고 있다.
탈세
SSC 나폴리 선수로 있을 때, 탈세가 있어, 살아생전 이탈리아로만 들어가면 그의 사치품은 이탈리아에 강탈당하게 된다. 탈세 액수가 커서, 이게 다 채워질 때까지 무한반복. 웃기는 게 그 물품들이 다시 경매품으로 나오고 마라도나 아는 사람들이 사서 만날 때 하고 온다던가 하는 웃픈 해프닝도...
약간 격한 아저씨 같은 느낌이 있는 분이다.
아르헨티나 축구협회와 사이가 별로인 듯하다. 자국 지지철회를 한 적이 있다.
인종차별 이슈가 좀 있다.
아르헨티나가 전 세계적으로 인종차별 이 높기도 하고, 문재점을 크게 못 느껴 보이는 그런 장면들
마라도나의 말말말
경기장에서 뛸 땐 삶도 사라져요. 문제도 사라지고, 모든 게 잊히죠.
그때 공을 강타한 것은 나의 손이 아니라 신의 손이었다.
- 1986 신의손 논란 후
펠레가 나이를 너무 먹어서 노망이 들었나 보다.
- 펠레가 네이마르가 메시보다 잘한다고 하자.
과거의 축구와 현대의 축구는 많이 다르지만 아르헨티나 대표팀의 등번호 10번은 나의 것이다. 나는 아직도 국가대표 유니폼을 벗지 않았다.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봐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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